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좌익 내셔널리즘 (문단 편집) === [[일제 강점기]] === [[일본 제국|일제]] 치하 [[사회주의]] 계열 [[독립운동가]] 중 [[국제주의]]자들은 이르쿠츠크파-화요파 등이 대표적이고, 민족주의자는 상해파가 있다. 상해파는 자신들도 민족주의자였으며 비록 여러 분란에 휘말렸지만 어쨌든 민족주의자와의 연대를 강조한 적이 많았다. 한편 [[이재유 그룹]](경성트로이카)은 구성원들이 다른 파벌보다 더 명백히 자신의 운동이 민족의식에 기반했음을 밝힌 경향이 있고, 표어 등에 항상 민족적 요구가 있어 민족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다. 다만 이들은 본인이 민족주의자라고 한 적은 없고[* 지금 기준으로는 민족주의적인 말을 많이 하는데 당대에는 '민족주의'라고 하면 특정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.] 민족주의자와 연대를 한 적도 없다.[* 이 당시 국내에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은 거의 세력이 없어서 연대할 필요가 없었다. 오히려 경성트로이카 후계조직인 경성콤그룹이 민족주의자 신명균과 연계한다.] 그들은 민족주의 혹은 공산주의 이념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당장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. [[이재유]], [[이관술]]이 각각 일제 피의자신문조서와 회고록에서 '조선의 적화를 위해 활동한 것이 아니라 조선 독립이 근본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활동했다', '민족의식에 기반해 운동하다 보니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렸다'라고 한 바 있다. 1930-1940년대의 저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계열이 국내 독립운동의 압도적 주류인 상황이고 또 당시 노동자를 위한 복지 이론이 마땅히 등장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의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. [[홍범도]]의 경우, 현대 한국에서 민족주의자로만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그는 볼세비즘 혁명가이기도 했다. [[아나키즘|무정부주의]]를 지지한 [[신채호]]의 경우 대놓고 민족주의를 지지했으며, 근대적 한국 민족주의 역사사상을 정립시켰기 때문에[[https://www.kci.go.kr/kciportal/ci/sereArticleSearch/ciSereArtiView.kci?sereArticleSearchBean.artiId=ART001570046|#]] 해외에서는 좌익 내셔널리스트로도 지칭하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